
배우 서은수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나는 아무래도 맑고 단정한 얼굴이 먼저 떠올라.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수처럼 여리고 복잡한 감정을 가진 인물도 잘 어울렸고, "수사반장 1958"의 이혜주처럼 따뜻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캐릭터도 자연스러웠거든.
그래서인지 나는 서은수를 한동안 '청순하고 단정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마녀2"에서 조현을 보고 한 번 생각이 바뀌었어.
그리고 최근 "메이드 인 코리아"의 오예진까지 보고 나니 더 확실해졌지.
서은수는 조용한 배우가 아니라, 지금까지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던 에너지를 조금씩 꺼내고 있는 배우에 가까운 것 같아.
완전히 달라진 말투
최근 서은수를 이야기하려면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오예진부터 봐야 할 것 같아.
서은수가 연기한 오예진은 1970년대 부산지방검찰청 특수부 소속 수사관이야. 정우성이 연기한 검사 장건영의 수사관으로, 남성 중심의 검찰 조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어가는 인물이지.
그런데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내가 알던 서은수와는 분위기가 꽤 달라. 일단 헤어스타일부터 그랬어.
기존의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 대신 짧은 히피펌을 선택했고, 부산 사투리를 거침없이 사용했어. 감독이 처음부터 오예진에게 히피펌을 제안했고, 서은수는 길게 기르던 머리를 어깨 위까지 잘랐다고 하더라.
나는 여기서 말투가 정말 중요했다고 봐. 같은 얼굴인데 사투리가 붙으니까 사람이 달라 보여.
특히 감정이 올라오는 장면에서는 예쁜 말투로 정리된 대사보다 툭툭 튀어나오는 부산 사투리가 캐릭터의 성격을 훨씬 직접적으로 만들어주더라.
서은수 본인도 오예진의 사투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점을 이야기했고, 강대일을 검거하는 장면에서는 대본에 없던 사투리와 애드리브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밝혔어.
그래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보면서는 서은수의 얼굴보다 말과 행동이 먼저 보이는 순간이 많았어. 이게 꽤 큰 변화였던 것 같아.


이미 한 번 보여줬던 반전
사실 이런 변화의 시작점은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 훨씬 앞에 있었어.
나는 서은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마녀2"를 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서은수는 이 작품에서 군인 출신의 에이스 요원 조현을 연기했어. 빠른 판단력과 강한 액션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기존의 청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지.
더 재미있는 건 서은수 본인도 이 역할을 굉장히 간절하게 원했다는 거야.
박훈정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과 비슷한 여성 캐릭터를 생각하고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갔는데, 감독은 오히려 "잘생겼다"며 다른 가능성을 봤다고 해. 이후 시나리오를 읽고 몇 시간 만에 감독에게 연락할 정도로 작품에 끌렸다고 하더라.
액션을 위해 액션스쿨과 운동을 병행했고 식단까지 관리하면서 준비했어. 단순히 기존 이미지를 깨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몸을 바꿔 캐릭터를 만들어낸 거지.
그래서 "마녀2"의 조현을 보고 있으면 서은수가 왜 이 역할을 그렇게 원했는지도 조금 이해가 돼.
배우 입장에서는 아마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계속 비슷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보다, 한 번쯤은 "어? 이 배우가 서은수였어?"라는 반응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 같아.
강한 사람의 다른 얼굴
그렇다고 서은수가 강한 캐릭터만 잘 맞는 건 아니야.
오히려 "수사반장 1958"의 이혜주를 보면 서은수가 가진 원래의 분위기와 새롭게 보여준 강단이 꽤 절묘하게 섞여 있어.
이혜주는 종남서림을 운영하는 서점 주인이면서 훗날 박영한의 아내가 되는 인물이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 외유내강형 캐릭터였어.
나는 이 역할이 서은수에게 꽤 중요했다고 생각해.
"마녀2"처럼 겉모습부터 확 바꾸지 않아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으니까.
특히 납치된 상황에서 보여준 연기처럼 평소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극단적인 감정을 한 장면 안에서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서은수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앞으로 액션이 많은 장르와 자신이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결국 서은수에게 중요한 건 '청순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청순한 얼굴은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그 안에 전혀 다른 성격을 집어넣는 것. 그게 오히려 서은수만이 만들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싶어.

"황금빛 내 인생"에서 시작된 긴 호흡
서은수는 이 작품에서 서지수를 연기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크게 넓혔고, 당시 인터뷰에서도 긴 호흡의 작품을 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다고 이야기했어. 서지수는 본인이 우는 장면을 보고 시청자도 함께 울었다는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완성된 배우였다고 말하는 대신, 본인도 부족함을 느끼면서 긴 호흡 속에서 배웠다고 이야기했어.
실제로 서은수의 필모그래피를 거꾸로 보면 재미있어.
"황금빛 내 인생"에서는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인물이었고, "마녀2"에서는 몸을 쓰는 액션 캐릭터가 됐고, "수사반장 1958"에서는 따뜻함과 강단을 함께 가진 여성이 됐어.
그리고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는 말투와 행동부터 살아 있는 수사관이 됐지. 그러고 보면 서은수의 변화는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었던 것 같아. 조금씩 다른 얼굴을 시도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범위를 넓혀온 거야.
서은수의 작품을 더 보고싶다면
서은수는 작품 하나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
가장 먼저 "황금빛 내 인생"을 정주행 하다면 서은수가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기 시작했는지 볼 수 있어.
그다음에는 "수사반장 1958"을 추천해. "마녀2"처럼 확 바뀐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혜주를 보면 서은수가 원래 가지고 있던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지 느낄 수 있어.
조금 더 의외의 서은수가 보고싶다면 "리갈하이"도 괜찮아. 이후 "호텔 델루나", "미씽: 그들이 있었다"처럼 장르와 분위기가 다른 작품들을 이어서 보면 서은수가 같은 얼굴로도 캐릭터의 결을 바꾸는 과정이 더 잘 보일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녀2"를 보는 거야.
이미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달라진 서은수를 본 뒤라면 조현의 등장이 단순한 이미지 변신으로 보이지 않을 거야.
'이 배우가 이런 역할도 하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어.
서은수는 아직 보여줄 얼굴이 많은 배우인 것 같아. 예쁜 얼굴을 앞세우는 배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얼굴에 어떤 말투와 태도, 어떤 감정을 입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최근 작품들이 계속 보여주고 있으니까.
나는 그래서 서은수를 볼 때 이제 "청순한 배우"라는 말보다 오히려 조용해 보이는데 한번 제대로 마음먹으면 꽤 멀리 가는 배우.
그게 지금의 서은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

